치즈를 두르두르

중독을 부르는 환상의 커플~ 빵과 치즈




<'아이러브치즈' 웹진에 올리는 네번째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치즈하면 와인을 떠올리실거예요.
국내에 와인 붐이 불면서 치즈가 와인의 찰떡 궁합 안주로 알려져서 인지 실과 바늘처럼
와인 판매 코너 옆에는 치즈 코너가 있고, 와인 관련 책은 치즈와의 페어링을 빠짐없이 다루지요.

오이치즈 역시 그랬지만 지금은 치즈하면 빵을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와인만큼 치즈와 어울리는 동반자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가끔은 둘의 조합이 특별한 날에나 먹는 스페셜 음식인 것만 같아 거리감이 느껴지거든요.
그에 비해 빵은 특유의 구수함으로 어떤 치즈든 포근하게 감싸주고,
다른 재료 없이 빵과 치즈만으로도 든든한 식사가 되니 이보다 더 좋은 환상의 커플이 없더군요.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 여름.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에 혹해 빵집에 들렸어요.
투박하게 생긴 빵들이 은은한 발효 향을 내뿜는데 입 안에서 군침이 돌더군요.
우산 쓰고 빵 봉투까지 들면 번거로울 듯해 망설열지만 결국 발효빵 몇 개를 사들고 나왔지요.
발효빵에 치즈를 곁들이면 빵 자체가 주는 기본적인 맛에 깊은 치즈 맛이 더해져
씹을수록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데, 그 맛이 생각나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요. ^^

그러고 보면 빵과 치즈는 많이 닮았어요. 느리게 태어나 건강한 음식으로 살다 가죠.
이것저것 첨가하기 보다 기본재료로 맛을 내고요. 발효 과정을 통해
치즈는 동물 젖에 들어있는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해주고,
빵은 반죽을 부풀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먹거리가 되지요.
둘 다 미생물의 도움 없이는 맛볼 수 없는 깊은 맛과 향이 나는 발효 음식이라서
그 매력에 한 번 빠지면 중독되고 마는, 먹으면 먹을수록 애정이 가는 음식이더군요. 

무엇보다 빵과 치즈는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어 좋아요.
부드러운 치즈는 버터처럼 빵에 발라 먹어도 되고요,
조금 단단한 치즈는 적당하게 잘라 빵 사이에 넣어 먹거나 빵 위에 올려 녹여 먹으면 그만이지요.
넉넉하게 만들어 내면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소임을 다하고요, 와인까지 곁들이면 분위기에 취하지요.







오이치즈는 발효빵 위에 요즘 제철인 무화과의 빨간 속살을 파내 잼처럼 바르고
두툼하게 썰어 놓은 샤프 체다 치즈를 올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어요.
빵에 넣은 샤프 체다 치즈는 숙성기간이 긴 미국산 체다 치즈인데요,
되직하고 우유 맛이 진해서 소스 요리에 넣어도 되고요, 짠맛이 강해 와인 안주로도 좋지요.
담백한 발효빵과도 잘 어울리고요.








푸른 하늘과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네요.
문득 이외수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올 가을, 치즈와 빵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삶을 잘 발효시켜볼까 합니다.




 
 
 
 
http://52chee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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